역사속의 여류문학 2
역사속의 여류문학 2
  • 이미숙 취재부장
  • 승인 2018.03.22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머리카락 짚신과 들꽃 한다발
[성낙규 공주대, 충남도립대, 한서대 충남학 강사]
[성낙규 공주대, 충남도립대,
한서대 충남학 강사]

 

한국의 보고(寶庫), 서울 용산 국립박물관. 특히 내 마음을 오래도록 사로 잡는 유물이 하나 있다.

바로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원이 엄마의 편지’이다.

몇 년 전, 문중에서 이장하다 우연히 발견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부장품이다. 무덤의 주인은1586년에 31살이란 나이로 죽은 이응태란 사람이었다. 남자의 관속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워느아바님ㅅ긔’ (원이 아버님께)로 시작되는 그의 젊은 아내가 쓴 언문 편지였다. 이미 400 여 년 의 세월이 흐른 뒤라 낡을 대로 낡은 편지였지만 종이에 적힌 절절한 사부곡 (思夫曲)은 수 백 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편지의 언문을 현대의 언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떠나자”. 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 (중략)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 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리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건가요?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살아 생전 너무나 행복해 그 행복이 믿기지 않았던 잉꼬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무심한 하늘은 어느 날 그녀의 뱃속에 유복자를 남겨놓은 채 그 남편을 영원히 데려 가버리고 말았다. 남겨 진 원이 엄마의 편지를 읽으면 그 피맺힌 절규가 들리는 듯하고 애끓는 슬픔이 절절히 느껴져 온다.

그 뿐 아니라 옆에 함께 전시되어있는 짚신 한 켤레는 더 한층 나의 심금을 울린다. 그것은 흔히 보던 보통의 짚신이 아니라 아내가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잘라 정성껏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백 마디의 말 보다 그 짚신 한 켤레가 더욱 애절한 아내의 마음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는 듯 하다.

오늘날의 기혼여성들이라면 자식과 남겨진 원이 엄마의 마음을 십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도 싱글 맘으로 여자 혼자 아이들을 기르기가 힘든데 여자들에게 족쇄가 채워졌던 조선시대에 홀로 살아가야 했을 그녀의 외롭고도 고단한 여생이 훤히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나 망자에게 보낸 절절한 아내의 편지와 머리카락 짚신이 곁에 함께 했기에 남편의 혼백이나마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남겨진 아내의 사랑을 확인하며 그나마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열흘 동안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투르판의 옛 성터인 고창고성 (古城)을 만나게 되었다.

이빨 빠진 늙은 위구르 노인이 모는 당나귀 마차를 타고 무너진 고성을 돌며 그 옛날 중국에 정복 당하기 전의 화려했을 이슬람국의 영화가 이제는 버려진 폐허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 잠들어있는 것이 비단 과거의 궁궐만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나며 보게 된 여러 기의 무너진 고분들은 그곳에서 한때 살았던 사람들 또한 그 페허의 시간 속에서 오래도록 같이 잠들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중에 개방된 한 고분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약간 경사진 곳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조그마한 방이 나오고 놀랍게도 그 곳엔 두 구의 미이라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관도 없이 그냥 흙 단위에 눕혀져 있는 두 미이라는 수 백년의 세월이 넘었는데도 건조한 기후 탓에 피부와 머리카락과 치아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어 놀랐다. 이미 실크로드의 다른 지역의 박물관등에서 수많은 미이라를 보았던 나 였지만 이곳의 미이라는 내게 특별함을 느끼게 했다.

그 두 구의 미이라는 부부 라 한다. 그런데 내게 특별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오른쪽 아내의 미이라 였다. 왼쪽의 남편이 위를 보고 똑바로 누워있는 자세인데 비해 그 옆의 아내 미이라의 머리는 남편 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마치 죽어서도 남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싶어 느껴지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말 없는 여인의 절절한 사부곡이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도 한 순간 들었다. 그 들이 한날 한시에 같이 죽었는지, 아니면 남편이 먼저 죽은 뒤 이후에 아내가 합장됐는지 등 그들의 신원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둘 다 검은 머리카락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20~30대의 젊은 부부인 것 같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다 이곳에 묻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도 살아 생전엔 서로를 사랑하고 아꼈던 사이였을 것 같고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단란하게 살았으리라. 이승에서 그들을 갈라놓은 것이 질병이었는지, 아니면 전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도 한때 이곳의 눈부신 태양아래를 거닐며 건강한 삶을 영위했을, 뜨거운 피가 돌던 사람들 이었을 것이란 사실을 말없이 증거하고 있었다.

다녀온 지 벌써 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미이라 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과 감동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처럼 부부간의 마지막 이별의 모습들은 한없이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그것은 동방의 한 작은 나라인 조선의 여인이든, . 서역의 어느 고성에 살았던 여인이든 별 차이가 없는 부부애란 보편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 보내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짚신을 넣어 준 원이 엄마,

죽어서도 남편을 보고 싶어 하는 듯 고개를 돌린 채 굳어 있는 투르판 고성 고분 속 이름없는 여인이든, 동서양과 시대를 뛰어 넘어 부르는 절절한 사부곡 들은 다 똑같이 나에게 큰 감동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내가 남편을 떠나 보내게 될 땐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별하게 될 지 혼자 상상해 보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